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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웬일인가 :: 2009/11/20 13:14

한국을 찾은 미 오바마 대통령의 정권 지르기 자세나 이를 두고 '정권 지르기' 제목을 단 우리 언론을 보고서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것은 분명 '정권 지르기'가 아니다. 태권도의 것도, 가라데의 것도, 합기도의 것도 아니다. 4년간 태권도를 수련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은 아마도 엉덩이로 배웠나 보다. 몸은 정면으로 단단히 고정한 채, 오른손을 허리춤에 붙여 정권으로 앞을 내지르는 것이 정확한 태권도식 '정권 지르기'다. 일부 합기도 계파에서는 몸통을 비틀고, 내지르는 손의 엄지를 아랫쪽으로 향한 변형 정권 지르기가 있지만 이마저도 오바마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최대한 이해를 시도한다면 겨루기 자세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왼발과 앞손을 내민 채 뒷손을 가슴 팍에 고정시킨 것이다.
결국 가능성은 두 가지다. 정권 자세를 취한 이 대통령 옆에서 오바마가 짝퉁 정권지르기를 했다던가 아니면 겨루기 자세를 오해한 이 대통령이 그만 정권을 '내지르고'만 것이다.
아무튼, 어제의 이 결정적 장면은 우리의 국기, 삼국시대부터 전해내려와 민족혼을 불태웠다 하는 우리 '태권도'를 유린한 것이 분명하다. 국기원 최대 수치의 날 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점심을 먹다.. :: 2009/11/18 18:05
요즘은 두통이 심하다.
몇 가지 원인이 추측되긴 하는데..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박... 감독과 점심을 하게 되었다.
좀 과한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 없자
주변의 채근이 시작됐고 가슴 속에
꼭꼭 눌러왔던 몇 가지 질문을 시작했다.
1. '친절한 금자씨'에서 피해 아동들의 부모들이 폐교에서 집단 살인을 자행하는데, 그 부분을 두고서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복수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금자씨가 갑자기 복수의 칼날을 다른 이들에게 넘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것은 금자씨가 복수를 도모하고 감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피해 아동들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자기 자신은 복수를 할 자격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금자씨는 복수의 자격이 있는 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관망자적 위치에 서게 되죠. 입 주변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눈 만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신은 감독인 제가 의상까지 직접 디테일하게 주문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2. 올드보이의 스토리 라인은 억울한 감금을 당한 어느 한 개인이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갈다, 결국 스스로 패착에 빠진다는 것인데 반해 금자씨는 스토리의 진행 과정 중에 피해 아동들의 부모, 즉 혼자가 아닌 다수에 복수를 구성하게 되는데요. 이것은 결국 독단에 빠질 수 있는 어리석은 개인이 아닌, 소위 '다자적 합의체'에 따른 복수, 복수의 사회적 의미를 염두한 것일까요? (질문에는 담지 못했지만 금자씨를 체포했던 전직 형사가 금자씨를 돕게 되는데, 이것 역시 전직 사법권력의 구성원마저 사법권력이 채울 수 없는 일상의 틈을 인정하고, 사적 공간의 새로운 '사법권력' 구성에 일조하는 게 아닌지...)
- 뭐 그럴 수도..(하하)...
3. (이 밖에 중국집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어두운 내용인 듯해서 물음을 피했던, 그렇지만 마음 속으론 꼭 묻고 싶었던 박쥐에 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생각의 정리 차원에서 적어 본다.)
박쥐에서 뱀파이어 신부는 말미에 이르러 종교단체 신도들이 모여사는 텐트촌을 찾아가 강간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터벅터벅 걸어나오는 송강호의 다리 사이로 성기가 노출되는데요. 언론은 이를 두고 많은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개인적으론 죄의식과 '정정당당함'에 천착해왔던 감독의 의도가 가장 상직적으로 담긴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 감독님이 기독교 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성서 창세기의 내용을 모티브 삼아 '속죄' 의식을 실현한 것 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죄의식이 생기게 되고 스스로 각자의 몸을 가리게 되는데요. 몸을 가린다는 것은 결국 죄의식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죄의식은 성본능의 자각인데 이는 곧 에덴동산 밖 인류의 근간을 이루고, 그를 방증하듯 '치정'은 속인들이 저지르는 온갖 죄의 시작과 끝을 이루게 되죠.
아무튼 영화에서 신부라는 고귀한 외적 신분과는 달리 뱀파이어로서 매일 죄를 범해야만 하는 주인공은 자신을 상대로 '기적'을 부르짖는 이들의 모습 앞에서 고통스러워 합니다. 박 감독이 평소 집요하게 매달리는 '이율배반' '죄의식'의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죠. 차라리 돌팔매질을 당했다면 그는 더욱 떳떳했을지 모릅니다. 이 같은 불일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바로 이 때 필요한 장치가 고해성사입니다. 나 자신이 죄임인을 인정하고, 그것의 알림을 통해 구원의 빛을 얻는 것이죠. 송강호가 신도들의 모인 텐트촌을 찾아가 강간을 시도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속죄 의식의 일환입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체가 공개되는 순간, 혐오의 시선을 받는 순간 오히려 내외면이 일치하는 해방감과 함께 주인공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주인공은 에덴동산 시절의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데 있어 세속의 기준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주인공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갑니다. 동틀 무렵의 햇살과 함께 그동안 자신과 갈등했던 뱀파이어의 육체마저 허물어버림으로써 고통의 세계로부터 완벽한 해방을 얻는 겁니다.


